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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아카]안경

Rye_in_your_eye 2017. 5. 8. 00:13

딩동. 초인종이 울리는 소리에 아카이는 현관문을 열었다. 늘 함께하던 소년 탐정단은 어디에 떼어놨는지, 코난 혼자 고개를 푹 숙이고 서 있었다. 전례가 없던 일에 아카이는 고민했다. 말 못 할 사정이라도 생긴 건가. 계속 땅을 보고 있는 것이 신경 쓰여 한쪽 무릎을 꿇어 눈높이를 맞춘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꼬마야, 이건 대체…."


얼굴 군데군데 핏방울이 맺혀 있는 데다, 크고 작은 멍이 들어있었다. 공놀이를 하다가 생긴 상처는 아니었다. 일방적인 폭행이었다. 어린아이의 얼굴을 엉망으로 만들어놓은 비양심적인 행위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범인을 잡는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아카이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하는 아이를 가볍게 안아 들었다.


"잠, 잠깐만요! 혼자 걸을 수 있어요!"


코난은 팔을 버둥거렸지만, 제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모습에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아카이는 얌전해진 아이를 거실 소파에 앉혔다. 곧바로 서랍장을 열고 구급상자를 꺼냈다. 쓸 일이 없기를 바랐는데. 그는 코난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어느새 드러난 녹색 눈동자에는 걱정스러운 기색이 서려 있었다.


"고개 들어."


여린 피부에는 잔뜩 생채기가 나 있었다. 단순히 긁힌 것이라면 다행일 텐데, 항상 쓰고 있던 안경이 없는 걸 보면 유리 파편이 박혀있을 가능성이 컸다. 2차 감염을 막으려면 핀셋을 물에 끓이는 편이 확실하지만, 그렇게 여유 부릴 때가 아니었다. 급한 대로 에탄올로 소독한 다음 코난을 조심스레 눕혔다.


"이렇게 다치고도 병원에 가지 않은 이유가 뭐지."

"그건 당연하잖아요. 에도가와 코난이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아, 아야!"

"눈을 다칠 수도 있었어."

"그렇지만, 윽!"


아카이는 아이의 체념한 듯한 말투가 거슬렸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조그만 머리 안에 담겨 있는 걱정거리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리광을 조금도 부리지 않는 점이 신경 쓰였다. 성인이라도 감당하기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주제에, 자신은 괜찮다고 주장하는 것이 답답하기도 했다.


한편, 코난은 지금의 상황이 불편해 죽을 지경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카이의 허벅지를 베고 눕는 건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데. 얇은 면바지 너머로 고스란히 느껴지는 탄탄한 허벅지의 감촉에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상처에서 오는 화끈거림과는 별개였다. 도저히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눈을 꾹 감았다.


"꼬마야."


나직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눈을 뜰 뻔했다. 이런 거, 심장에 좋지 않아.


"아프면 아프다고 말…."

"그런 게 아니에요!"


어린애 취급하는 말투에 울컥해서 소리치고 말았다. 아, 이러려던 게 아니었는데. 뒤늦게 후회가 밀려왔다. 사람이 기껏 걱정해주는데 왜 그따위로 말이 튀어나갔을까. 충분히 감정이 상할 만한 일이었다. 혹시 화가 난 건가, 살며시 눈을 뜬 순간 일렁이는 녹빛에 숨이 멎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저, 그러니까…."

"눈 감아."

"네."


평소보다 더 말투가 딱딱해진 것 같았다. 진짜, 쿠도 신이치, 나가 죽어라. 그래도, 그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는 싫었다. 동경 같은 감정은 아니었다. 질투도 아니었다. 단지, 자신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해도, 서른 살이 넘는 FBI 수사관에게는 '꼬마'나 다름없다는 사실에 짜증이 치밀었다. 그때, 시야가 하얗게 물들었다. 눈을 감고 있어도 부실 정도로 밝은 빛에 절로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쉬, 괜찮아."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느껴졌다. 그러니까, 어린애 취급은 싫어. 코난은 억지로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시릴 정도로 환한 빛에 금세 눈물이 고였지만 다시 눈을 감을 수는 없었다.


"지금 뭐하는…."

"아카이 씨."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중에 하도록 해."

"아뇨, 지금 얘기할래요."


이 꼬마는 언제나 자신을 놀라게 만들었다. 거절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단호한 표정에 아카이는 손전등을 끄고 코난을 일으켜 세웠다. 잔뜩 흐려진 눈동자에 시선이 갔다. 


"저는 어린애가 아니에요."

"잠깐…."


그가 입을 다문 것은 본인의 의지가 아니었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아카이는 재빠르게 저택을 나서는 아이를 붙잡지 않았다. 등장부터 퇴장까지, 한바탕 폭풍이 몰아친 것 같았다. 고개를 몇 번 내젓고 테이블 위에 널브러진 것들을 정리했다. 잠깐이지만 손전등을 비췄을 때 반짝이는 것은 보이지 않았으니 괜찮을 것이다. 구급상자를 제자리에 가져다 놓고 소파에 몸을 기댔다. 한숨인지 웃음인지 모를 것이 새어 나왔다. 아직까지도 미약한 열기가 남아있는 입술을 매만졌다. 찌릿한 감각이 손가락을 타고 전해졌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자신이 당황할 것이라 생각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추리는 빗나갔다. 아카이 슈이치는 어리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신체의 일부를 허락할 정도로 무르지 않았다.


꼬마 취급을 하지 말아달라, 그 당돌한 발언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 생각만으로 즐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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