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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은 언제나 확실한 것을 요구했다. 단순한 거래부터 유명인사의 암살까지 거의 모든 것이 사전에 진의 손을 거쳐야만 했다. 그는 모든 것에 철두철미한 남자였다. 이때까지 자신과 부딪히는 일은 없었지만, 오늘 갑자기 호출한 것을 보면 이번 임무에 문제가 생긴 듯했다. 진과 독대하는 것은 언제라도 달갑지 않았다. 노크로 잠입한 순간부터 마인드컨트롤을 철저히 해왔지만 진과 같이 있으면 당장에라도 제거당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 무기질적인 눈동자로 자신을 샅샅이 파헤치는 감각은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피할 수 없다면 빨리 해치우고 떠나고 싶은 마음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곧 그가 머무르고 있는 방에 도착했다. 스위트룸답게 객실 안에 딸린 방이 여러 개였다. 그중에서 담배 연기가 자욱한 곳에 진이 있었다. 킹사이즈의 침대 위에서 시가를 피우는 남자의 얼굴에는 나른한 만족감이 감돌고 있었다. 어쩐지 시큼한 냄새가 난다 했더니.
"버번. 타임스퀘어 한복판에 폭탄을 설치하다니, 아주 놀라워."
"칭찬이라면 고맙게 듣죠."
"다만, FBI가 아무리 멍청하다고 해도 그것까지 찾아내지 못할 머저리들은 아니지. 저격수를 준비해."
"그런...!"
어떤 말도 소용없었다. 진은 권총을 제 이마에 겨눈 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내 방식에 따르지 않는 버러지는 필요 없어. 설마, 버번. 나에게 거역할 생각인가?"
화가 치밀어올랐다. 하지만, 총을 들고 있는 이는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으면 가차 없이 방아쇠를 당길 사내란 걸 알기 때문에 긍정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용건은 그게 끝이었는지 이만 가보라는 말에 주저 없이 뒤돌아 나오는데, 드르륵하고 무언가 열리는 소리가 났다. 교묘하게 거울로 가려진 슬라이딩 도어가 열리고 있었다. 더운 공기와 함께 그 안에서 나온 것은 라이였다. 머리카락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에 놀랐는지 약간 벌어진 입술에 눈이 갔다. 그 아래의 피부는 울긋불긋한 흔적으로 가득했다. 하, 이게 주목적이었군. 버번은 그를 지나쳐 객실을 빠져나왔다.
*
타임스퀘어는 발을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북적였다.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친구, 가족, 혹은 연인과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서 들뜬 분위기가 가득했다. 앞으로 1분 뒤. 커다란 전광판에서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화려한 불꽃놀이의 시작과 동시에 폭탄이 터질 것이다. 해가 바뀌자마자 세상을 떠나게 될 상대에게 미리 작별인사를. 3, 2, 1...
"제로."
기대에 찬 함성은 비명으로 바뀌었다. 이 자리를 벗어나려고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사람들 위로 불꽃이 펑펑 터지는 모습이 한 편의 블랙 코미디 영화 같았다. 점화가 시작된 이상 예정된 대로 20분은 불꽃놀이가 계속될 것이다. 공포로 물든 타임스퀘어를 유유히 빠져나온 버번은 저격 지점으로 향했다. 어두워서 대략적인 실루엣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원통형의 물체가 데구르르 굴러왔다. 저격총의 암시 스코프였다. 이 모델을 쓰는 저격수는 제가 알기로 한 사람밖에 없었다.
"진의 섹스파트너가 서포터였다니,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나는군요. 결과적으로는 필요 없게 되었는데 어쩌나. 아, 그렇지. 섹스파트너로서는 아직 할 일이 남아있네요. 그렇죠?"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라이플을 분해하는 그를 보고 있자니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버번은 그를 끌고 내려와 자신의 차에 처박았다. 반항하지 않는 모습에 더 화가 났다. 평소라면 어느 정도 풀어두고 삽입했을 것이다. 지금은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버번은 단번에 제 것을 밀어 넣었다. 끝까지 삽입했지만 잔뜩 긴장된 내벽에 갇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게 더 자극적으로 다가왔다. 빈틈없이 성기를 감싸고 있는 점막이 만족스러웠다. 이 상태도 나쁘지 않았지만, 그의 반응이 궁금했다.
"뭐든 들어오기만 하면 이렇게 꽉 물고 놔주지 않나 봐요. 진이 만족할만 해."
여전히 아무 말도 없었다. 오기가 생겼다. 상체를 숙여 그의 귀를 잘근잘근 씹었다. 아픔 때문인지 쾌감 때문인지 라이의 몸이 잘게 떨렸다. 처음으로 솔직해진 그에게 속삭였다. 꽤나 다정한 목소리가 나왔다.
"이런, 무서워하지 마요. 고장 난 귀를 고쳐주는 것뿐이니까."
"...시답잖은 말은 그만두지."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요."
조금 느슨해진 틈을 타 추삽질을 시작했다. 뭉툭 튀어나온 곳을 찌를 때마다 움찔거리는 몸이 마음에 들었다. 후배위는 꽤 좋아하는 체위였다. 얼굴을 볼 수 없는 것은 아쉽지만 깊게 삽입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지금처럼. 버번은 허릿짓에 박차를 가했다. 좁디좁은 차 안이 살과 살이 부딪히는 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사정의 여운을 즐기며 그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다리 사이로 질척이며 흘러나오는 백탁액이 선정적이었다. 새해부터 몸을 섞는 것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속궁합은 최고였다. 별로 거칠게 섹스하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유독 그와 할 때면 자제력을 잃게 되는 것 같았다. 아직까지 라이는 몸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럴 만 했다. 하룻밤 사이 두 명을 상대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테니까.
"라이. 내년에는..."
버번은 입을 다물었다. 이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낸 자신에게 조소를 금치 못했다. 조직에서 코드 네임까지 받은 남자와 뭘 하겠단 말인가. 이 정도 선에서 끝내야 했다. 미처 말하지 못하고 삼킨 말의 뒷맛이 씁쓸하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