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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루아카]감기

Rye_in_your_eye 2017. 2. 20. 18:30

마스크를 끼고 나타난 아카이를 보며 후루야는 쿠도 저에서의 모습을 떠올렸다. 시간이 흐르고 난 뒤, 오키야 스바루의 정체를 말해주는 아카이가 어찌나 얄밉던지, 코난, 아니 신이치의 아버지까지 합세해서 자신을 속였다는 게 꽤 분했었다. 지금이야 웃으며 넘길 수 있게 되었지만.

 

콜록-

 

회상을 깨는 기침 소리에 후루야는 입을 삐죽이며 말을 건넸다.

 

바보같이, 감기나 걸리고 뭐하는 겁니까.”

콜록, 내가, 알기로는, 감기에 걸리지 않는 쪽이 바보라던데.”

키스도 못 하게 하는 바보가 하는 말 따위 믿지 않아요.”

본심은, 키스하고 싶다, 라는 건가.”

 

말문이 막혔다. 하여튼 입만 살아가지고. 하루 종일 껴안고 싶고, 입맞추고 싶은데 감기에 걸렸다며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하는 고지식한 아카이 슈이치. 이 사람을 어찌해야 할까. 열도 있고, 계속 기침을 하면서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는 모습이 걱정스러웠다. 그런 점에 다시 한번 더 반할 것 같지만, 자기 몸은 챙겨가면서 하면 좋을 텐데.

 

약은 먹었어요?”

먹지 않아도 괜찮아. 특효약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긴, 약을 먹으면 7, 약을 먹지 않으면 일주일이라는 말도 있더군요.”

 

잠깐만. 후루야의 머릿속에 번개가 쳤다.

 

여기 앉아봐요. 감기에 아주 잘 듣는 약을 가져올게요.”

호오…….”

 

여전히 콜록거리는 연인을 뒤로 한 채 후루야는 부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시 생각해보니, 예전의 일은 36524시간을 갚아줘도 모자란 것 같이 느껴졌다. , 그래. 자신은 전혀 속이 좁은 것이 아니다. 잘못한 사람은 아카이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손쉽게 골탕 먹일 기회가 오겠어, 하는 심정으로 찬장을 뒤지다 보니 어느새 원하던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파이칼. 60도가 넘어가는 독한 술을 머그잔에 가득 따랐다. 전자레인지에 1분 동안 돌렸더니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모습이 누가 봐도 약이라고 착각할 만하다. 감기로 후각과 미각이 마비된 사람이라면 더더욱. 코난에게 고마워해야겠다. 아니, 서쪽의 명탐정에게 고마워해야 하나? 후루야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머그컵을 쟁반에 받쳐 들고 나왔다.

 

, 쭉 들이켜요. 한 방울이라도 남기면 화낼 거니까.”

레이 군이 내 보모라도 된 건가?”

 

두 손으로 컵을 잡고 투덜대는 모습이 귀여웠다. 아니, 잠깐. 서른 살 넘은 남자를 귀엽다고 표현해도 괜찮은가. 후루야는 고개를 저었다. 귀여워? 정말? 끊임없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 바라본 곳에는 촉촉하게 젖은 올리브색 눈동자가 있었다. , 귀여운 거 맞네. 이대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중요한 임무가 남아있었다. 넘어가지 말자. 후루야 레이. 정신 바짝 차리고, 타도 아카이 슈이치!

 

약을 잘 먹어야 빨리 낫죠, -.”

이거야 원…….”

 

목울대가 움직이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렸다. 슬며시 고개를 드는 죄책감을 묻어버리는 소리였다.

 

이정도면 만족하나?”

 

바닥까지 깨끗하게 비운 컵을 건네며 아카이가 물었다. 만족하고 말고요. 후루야는 속으로 진득하게 웃었다. 아카이가 술에 취한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해서, 어떤 주사를 부릴지 기대됐다. 하나도 빠짐없이 찍어서 두고두고 놀려줄 생각이었다. 일찍 퇴근하지 않으면 연락처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송한다고 협박할까, 아니, 상영회를 하는 것도 괜찮은 생각인 것 같은데. 즐거운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레이, , 이거, 약이, 아닌, , 같은데…….”

 

아까보다 확연하게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손을 뻗어 이마에 댔다. 데일 듯이 뜨거웠다. 말이 꼬이는 것까지, 완전히 취해버린 게 틀림없었다. , 아카이 슈이치, 당신의 술버릇은 뭔가요. 사랑한다고 고백한다거나, 치댄다거나, 그런 거라면 환영입니다. 하지만 기대한 것과 다르게 아카이는 아무 말도 없었다. 설마, 하는 생각에 바라보니 두 눈이 감겨 있었다.

 

……뭐야, 자는 겁니까?”

…….”

 

새근새근 숨소리만 들렸다.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피곤했는지, 그 새 잠들어버린 연인의 모습에 남아있던 장난기가 눈 녹듯이 사라졌다. 후루야는 조심스레 아카이의 허벅지 아래에 손을 넣고 다른 손으로는 등을 받쳤다. 작은 체구가 아님에도 왜 이렇게 가볍게 느껴지는 건지,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하고 속으로만 핀잔을 줬다. 뭐든지 잔뜩 차려놓을 테니까, 내일 아침을 기대하라구요 아카이 슈이치.